괴물은 태어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공희정 / 한국디지털위성방송 대외협력팀 팀장

1년에 단 한번, 현재로의 일탈이 가능한 방학. 학교 기숙사에 남은 8명의 학생과 선생님, 그리고 교통사고로 몇 일간 함께 하게 된 정신과 의사 요한이 눈으로 고립된 수재들의 학교 수신고에서 보낸 8일간의 이야기인 8부작 드라마「드라마 스페셜 - 화이트 크리스마스」(KBS). 추리심리극이다.


“너는 나를 비참하게 물들였고, 너는 나를 구석괴물로 만들었고, 너는 내가 아는 것을 침묵했어. 너는 내 가망없는 희망을 비웃었고, 너는 내가 갖은 단 하나를 빼앗아 목에 걸었고, 너는 내가 내민 손을 잡았다가 놓아버렸고, 그리고 너는 눈앞의 나를 지워버렸고, 마지막으로 너는 나를 가로챘어. 아기예수가 태어난 밤에 나는 너를 저주한다.” 방학 첫날, 아이들은 무겁고 음산한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저주의 편지. 누가 편지를 보냈을까. 그것을 쫒아가는 과정은 치밀하게 설정된 인물들을 통해 출구를 알 수 없는 미로를 따라간다.

‘혼자 있을 때 얼굴이랑 남들과 같이 있을 때 얼굴이 다른’ 수신고 아이들은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아픔, 불안함, 약함을 숨기기 위해 공격적, 냉소적, 방어적, 폐쇄적 인간으로 스스로를 포장하고 있다.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따라 그들은 숨겨진 진실을 찾아낸다.


드라마 전반부가 편지 작성자에 대한 추리였다면, 후반부는 어수룩해 보이는 정신과 의사 요한이 아이들의 세계에 스멀스멀 개입하면서 심리극으로 전환된다. 그저 교통사고를 당해 잠시 수신고에 신세를 지는 환자로 생각했던 요한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연쇄 살인범. 미래에 대한 무한 가능성과 정립되지 않은 미완의 시대를 건너고 있는 수신고 아이들은 요한에 의해 실험 대상이 된다. 실험의 소재는 ‘신뢰’. 그가 알고자 했던 것은  ‘괴물은 태어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알콜 중독의 아버지와 성적으로 문란한 엄마만이 괴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멀쩡한 부모도 괴물을 만들 수 있다고 요한은 주장한다. 아이들은 처절하게 자기 붕괴 과정을 겪는다. 붕괴는 새로운 창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살기위해 잔혹해져야 한다는 잔인한 현실과 마주하는 첫 관문이기도 했다.


‘졸렬(拙劣)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어느 누구도 자신의 죄를 반성하지 않는 변명의 시대. 드라마는 그 슬픈 자화상을 우리가 외면하지 못하게 조금도 긴장의 끈을 풀지 않았다.


뚜렷한 캐릭터와 치밀한 구성,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이자 고해 성사 같은 대사. 하얀 눈과 푸른 창공의 어울러짐, 정지된 피사체, 흑백의 조화, 여백의 미를 살린 화면 구성과 완벽한 연출. 감독은 작가가 전하고자했던 인간 본성에 대한 메시지를 최적의 상태로 시청자들에게 전해주었다.


“사자가 기다리는 강가, 당신은 다리를 다친 얼룩말. 시간이 당신 편이 아닌 그곳에서 옆에 있는 친구가 다쳤다는 것을 눈치 챘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목이 타들어가는 그 때, 누군가의 희생 없인 한 모금의 물도 마실 수 없는 그곳에서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참을성 없는 누군가가 먼저 강물에 뛰어들기를, 누군가의 다리가 불편하기를, 어린 새끼가 낙오되기를, 그리하여 굶주린 사자가 만족하기를 당신은 바라지 않을 수 있는가?”


* 김수영의 詩 <절망> 에서 인용

Updated : 2011.04.05 0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