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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장기하 현상'이라 불러도 될 만큼 장기하에 대한 관심이 높다. 현재 장기하는 인디계의 서태지라는 칭호까지 획득하며 거의 인디씬의 구세주처럼 칭송되고 있다. 빅뱅의 인기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실제로 장기하는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빅뱅을 제치고 네티즌이 뽑은 올해의 남자 음악인에 선정됐다.
대중적인 인기만 획득한 것은 아니다. 대중적인 것에 다소 비판적인 평단의 호의적인 반응까지 이끌어낸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최우수 록 노래, 올해의 노래상까지 휩쓴 것은 대중의 관심도만이 아니라 나름대로 음악적인 성과까지 입증을 받았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인디씬의 희망이고 침체된 대중음악계에 계속해서 활기를 부여하는 존재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 의문이 남아있다.

사실 장기하의 곡이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하거나 그가 절창을 했기 때문에 빛난 것은 아니었다. 한 마디로 곡의 예술성만으로 획득한 성과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의 생명력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 '싸구려 커피'나 '달이 차오른다, 가자'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부분 그것이 지니고 있는 재미에서 기인한다.
우선 노래와 랩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싸구려 커피'의 특이한 노래 부르기와 룸펜의 생활을 희화화한 노랫말 덕분에 눈길을 끌었다. 멜로디나 리듬 구성, 하모니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거는 뭐 감각이 없어", "이거는 뭔가 아니다 싶어" 같은 감탄사조의 가사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의외성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룸펜의 일상을 감각적인 언어로 풀어낸 것이 주효했다. "미지근한 콜라가 담긴 캔을 입에 가져다 한 모금 아뿔사 담배꽁초가", "벽장 속 제습제는 벌써 꽉 차 있으나마나, 모기 때려잡다 번진 피가 묻은 거울을 볼 때마다 어우! 약간 놀라" 등의 극도로 사실적인 묘사는 웃음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싸구려 커피'가 말로 웃겼다면 '달이 차오른다, 가자'는 몸으로 웃겼다. EBS 스페이스 공감이라는 공연 프로그램에 나와 선보인 장기하 그리고 정체불명 백댄서 미미 시스터즈의 춤사위는 B급 액션영화의 슬로우 모션처럼 어색하고 무표정했다. 하지만 그런 부자연스러움이 별난 것을 찾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신장 개업한 가게 앞의 길죽한 풍선 인형처럼 흐느적거리는 팔동작, 어정쩡한 스텝에 몸을 좌우로 살짝살짝 비틀며 박수를 치는 모습은 분명 흔한 퍼포먼스는 아니었다. 이 퍼포먼스로 장기하와 그의 그룹 장기하와 얼굴들은 얼굴을 알렸다.
장기하가 다른 가수들과 분명한 차이를 드러낸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창조적인 아티스트라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다고 본다.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툭툭 말을 내뱉는 별난 노래 부르기 방식은 사실 장기하가 시작이 아니다.
송골매로 한 시대를 풍미한 배철수의 텁텁한 발성, 그리고 시를 낭송하듯 느긋하게 운율을 타던 산울림의 김창완을 떠올려보라. 뭔가 비슷한 구석이 있지 않은가. 이 정도 되면 장기하의 노래 부르기 방식은 창조가 아니라 습작 수준에 머무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배들의 방식을 따라 했다고 해서 비판만 한다면 가혹한 평가가 될 수도 있다. 대중음악의 역사가 창조보다는 모방의 역사라고 할 때 장기하의 스타일이 완전히 새롭지 않다고 해서 내치기만 하는 것은 편협한 시각을 드러내는 것 밖에 안 될 것이다. 문제는 그의 노래가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가이다. 아무런 감동 없이 한 때 사람들을 자극하고 지나가는 노래라면 우리가 이렇게 열정을 쏟아 부을 필요가 없다.
상황을 절묘하게 훑고 지나가는 장기하의 솜씨는 인정하지만 그의 가사는 우리네 삶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도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타인에 대한 시선이 없다는 것은 그렇다 쳐도 그의 가사엔 처절한 자기고백도 없다. 노랫말로 재미를 추구하는 것 이상은 아닌 것 같다. 이번 정규앨범의 수록곡 '별일 없이 산다'의 가사는 그러한 무감정의 정서를 드러내는 것 같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싸구려 커피'의 가사를 자세히 들여다봐도 이렇다 할 감정의 이입이 없다. 룸펜의 정서를 대변한다고 보기에는 확실히 무리가 따른다. 룸펜의 초라한 주변상황을 재미있게 설명하긴 했지만 거기에는 가슴에 와 닿는 감정의 표현이 없다. 그렇게 누추한 곳에 몸을 누이는 젊은이에게 어떤 슬픔, 분노, 쓸쓸함 등의 감정이 하나도 표출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하게 느껴진다. 어쩌다 손으로 때려잡은 모기에서 피가 나왔다고 놀라는 정도에서 그친다면 이것은 감정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자극에 대한 감각의 단순한 반응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것을 두고 일부에서 청춘의 정서를 대변한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가사도 가사지만 미미 시스터즈라는 댄서의 존재는 그가 벌이는 일련의 액션들을 키치로 볼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며 장기하에 대한 애정을 거둬들이게 한다. 말도 없고 항상 무표정인 미미 시스터즈는 허무한 춤사위로 보는 이로 하여금 의아한 감정을 품게 하며 조용히 퇴장한다. 장기하가 자기만의 음악 스타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극과 감각을 앞세운다는 것을 다시 증명하는 대목이다.
과연 몇 년 후에도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와 '달이 차오른다, 가자'가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 파고 울림을 줄 수 있을까. 지금으로써는 아니라는 쪽에 더 기울게 된다. 만약 이 가정이 시간이 좀 더 지나 현실이 된다면 지금 장기하의 노래는 잠시 사람들을 재밌게 해 준 정도에서 의미가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장기하와 조금 거리를 두고 볼 필요가 있다.
뭐 하나 재미있다고 우르르 몰렸다가 그 효용가치가 다하면 또 다시 썰물처럼 빠져 나오는 지금의 풍토에서는 의미 있는 예술적 결과물이 나오기를 기대하기 힘들다. 인디씬의 서태지라는 칭호를 갖다 붙이며 장기하만이 인디씬의 희망인 것처럼 주목하는 것이 그래서 문제다.
크라잉 넛, 노브레인 등 펑크 밴드들로 불을 지핀 인디씬은 현재 다양한 장르가 펼쳐져 있고 실력 있는 신인밴드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인디씬의 풍성한 내용물들을 놓치지 않고 제대로 평가하고 향유하기 위해서라도 장기하에 지나친 관심과 열기를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다. 그렇게 호들갑을 떨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된다. 그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