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성재 추모 특집] 전설의 뮤지션, 신묘한 댄서, 우리는 지금도 그를 원한다
최승현 기자 / 조엔 편집장 vaidale@chosun.com

1995년 11월 19일. SBS ‘생방송 인기가요’. 커다란 장갑을 끼고 무대를 휘젓던 김성재의 역동적인 몸짓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말하자면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야, 하지만 나는 말할 수 없단 얘기야.”. 노래는 명쾌했고 비디오 게임 속 ‘버추얼 파이터’를 연상시키는 춤과 의상은 충격적이었다. 듀스 시절을 넘어서는 압도적 카리스마가 화면 위로 넘쳐 흘렀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멈췄다. 다음 날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완벽한 마지막 무대. 그러나 그 순간부터 한국 대중음악사의 비극적 전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많다. 확실한 건, 그가 자살을 했거나 약물중독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는 것. 주변 사람들 증언을 종합해보면, 그는 당시 삶에 대한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였으며, 약물 따위에 자신의 심신을 맡길 만큼 허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솔로 가수로서 명쾌한 첫 걸음을 내디딘 입장이었다. 첫 번째 무대와 첫 솔로 앨범 ‘말하자면’의 완성도만을 놓고 보면 듀스 시절 못지 않은 인기 행진이 무난할 것으로 보이는 순간, 그가 죽음을 선택했을 가능성은 ‘제로’다.

▲ 2인조 그룹 '듀스'

김성재는 이현도와 함께 듀스를 구성한 한국 힙합의 선구자다. 흔히 듀스의 음악은 이현도의 손 끝에서 나왔다고 이야기하지만 김성재 또한 창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게다가 김성재는 의상과 안무를 전담했다. 이현도가 음악 감독이라면, 김성재는 스타일 감독, 안무 감독이었던 셈이다. 이현도는 한 인터뷰에서 “듀스를 하면서 안무, 의상, 디자인, 음악의 아이디어까지 정말 성재 덕을 많이 보았다”며 “그 당시 듀스는 듀스 가방, 힙합 체크 남방 등 많은 패션 아이템을 유행시켰는데 이 모든 게 성재의 아이디어였고 지금도 성재의 남다른 패션 감각에 깜짝 놀라곤 한다”고 했다. 클론의 강원래는 “아직도 김성재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쁘게 춤을 췄던 댄서”로 기억한다.


솔로 앨범 ‘말하자면’은 당시 흑인 음악의 최신 조류에 무게 중심을 두면서도 서정적 색채를 유지한 기발한 작품이었다. 타이틀곡 ‘말하자면’은 노래 초반부터 후렴구를 집어넣는 파격적 구성을 선보였다. 아기자기한 편곡은 듀스 시절 그대로였다. ‘염세주의자’는 무심한 듯 읊조리다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김성재의 해맑은 보컬이 빛나는 곡. 그는 잔기교 없이 솔직하게 노래하는 몇 안 되는 한국의 가수였다. ‘렛츠댄스(Let’s dance)’는 김성재의 예리한 래핑이 요동 치는 곡. “역시”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가장 가슴 아픈 곡은 ‘마지막 노래를 들어줘’다. 최대한 단순하게 편곡된 이 노래는 끝 없는 심연으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마치 김성재가 자신의 앞날을 예고하기 위해 만든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 故 김성재

김성재와 이현도의 듀스는 데뷔 초, ‘서태지와 아이들’의 대성공 이후 숱하게 쏟아졌던 아류 댄스 그룹의 하나로 취급 받았다. 하지만 이들의 능력이 검증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리듬 라이트 비트 블랙(Rhythm Light Beat Black)’, ‘포스 듀스(Force Deux)’ 등의 음반은 전설로 취급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시대 초월 ‘명반’. 신묘한 각운, 빈틈 없는 편곡, 다양한 장르와의 교배 등을 통해 한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압권은 ‘굴레를 벗어나’. 치밀하게 계산된 이성적 편곡과 뜨겁게 폭발하는 감성적 열창이 공존하는 놀라운 곡이었다.

두 사람의 음악적 역량은 이 순간 절정에 달한 듯 했다. 그러나 이 앨범을 끝으로 듀스는 해체됐다. 김성재는 솔로 가수로 프로듀서 이현도와 함께 빼어난 음악적 성과를 남겼으나 곧 세상을 떠나버렸다. 친구의 사망 이후 실의에 빠져있다 다시 일어선 이현도 역시 솔로 가수로 ‘사자후’ 등의 히트곡을 남겼으나 현재는 언제 무대로 돌아올 지 알 수 없는 상태. 15년이 흘렀다. 하지만 듀스, 김성재, 이현도는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영웅’으로 남아있다. 무대를 휘어잡는 그들이 보고 싶은 건, 나 혼자 뿐이 아닐 것이다.

Updated : 2009.02.27 09:20